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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교내활동/[2%] 독서동아리

[2%] 일곱 번째 활동, 『홍길동전』

2%의 공식적인 활동으로써는 이게 가장 마지막 활동이다. 한국 고전! 지금까지 했던 책들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정말 유럽고전이나 외국 문학만을 해왔기 때문에 마지막이라도 한국 고전을 해보자 싶어 이렇게 그나마 접근하기 쉬운 『홍길동전』을 고르게 되었다. 한국 고전이라 하면 대체로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고, 나또한 한국 고전을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운 것부터 천천히 해 나가려고 한다. 원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들 하지 않나.



토론



2018 「홍길동전」 읽고 토론하기

이프로


토론 주제: 의적은 과연 옳은 것인가?


토론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의견을 발표, 모두 한 번씩 발표한 뒤에 한 사람씩 반박을 하고 결론을 짓는다. 내용정리에는 시간제한이 있다. 의견 발표에는 4, 반박에는 8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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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발표


유시연: 의적은 현대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서 의적은 옳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에는 법이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마땅히 여겨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해 권력을 잡고 있는 쪽들도 시민들을 의식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홍길동이 의적생활을 할 당시에는 달랐다. 모두가 그것이 법에 반하는 행동임을 알면서도 그가 권력자여서, 자신에게 위험을 가할 수 있어서 입도 벙긋 안하고 가만히 있었다. 만들어두었던 법들 또한 온갖 더러운 짓들이 가득한 뒷세계에서는 먹히지 않는 법이다. 그럴 때는 홍길동과 같은 누군가가 나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윤○: 옳지 않다- 의적의 정의는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고, 탐관오리는 자신의 욕심을 추구하고 더럽게 부패한 관리이다. 하지만 도둑질도 욕심을 추구하는 것과 같이 엄연한 잘못이기 때문에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훔치는 의적이나 자신의 욕심만 추구하는 탐관오리나 둘 다 옳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차지: 의적은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옳지 않다. 아무리 부패한 사회에서 정의로운 일을 한 것이라 할지라도 법적으로 큰 죄가 된다. 생각해보자. 홍길동전에서의 홍길동은 나라를 바꾸겠다는 뜻을 가지고 의적이 되어 활동을 한다. 그러나 이런 홍길동같은 사람들이 많다면? 모두 자신의 정의로운 뜻을 펼친다는 명분으로 나라에 대항하여 난리를 일으킬 것이며,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법이 왜 있겠는가. 나라 꼴이 어떻던 간에 나라의 질서를 잡기 위해서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라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혼란을 야기하는 모든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이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의도가 선하건 악하건 도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탐관오리에게서 다시 그 재산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건 결국 탐관오리와 다를 바가 없다. 명분이 있다고 해서 도덕적,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도둑질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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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유시: 만약에 홍길동이 없었다면 "그 시대"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시대는 항상 변하므로 탐관오리들의 행동은 언젠가 해결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당시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또한 홍길동은 의적이지, 자신의 권력을 추구하는 야심가가 아니다. 사회상의 다름으로 인해 일어나는 전국시대와 같은 것들은 야심가들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윤: 아무리 사회가 개인의 소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그 소망을 이루려 살아가는 과정이 곧 삶이라 생각한다.사회가 뒷받침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망을 버리고 사회적 관습만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그게 진정한 비극이 아닐까? 로미엣과 줄리엣이 서로의 사랑을 따라가지 않고 사회적 관습을 선택했다면 명작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지: 홍길동처럼 세상을 바꾸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야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길동처럼 법을 어기며 새로운 사회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었을까? 지혜로웠다면 충분이 평화롭고 합법적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생각해보자. 앞서 주장한 것처럼 홍길동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면 어떨까? 만약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사회상이 다르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틀림없이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이은: 사회적 관습이 뒷받침 된 후에 개인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건 사회적 관습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소망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일인가. 그 소망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이루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가 한 발 자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독후감



「홍길동전」을 읽고

서울상도중학교 2학년  번 유시연

 

 홍길동전을 이번 독서동아리의 마지막 책으로 정한 이유엔 학교 교과서의 영향이 컸다. 슬슬 한국 고전 문학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던 차에, 독서동아리로 한국 고전 문학을 읽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유명한 고전 문학인 사씨남정기와 홍길동전 중에서 뭐부터 먼저 해야 할까 애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한국 고전 문학을 책으로 읽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고, 교과서에 나왔던 내용이니까 더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해서 일부러 사씨남정기 대신에 이 책을 골랐다.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온 홍길동전을 책을 빌려서 읽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거의 모두가 홍길동전 아세요?” 하면 .”라고 대답할 터였지만, 실제로 읽어본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오묘했다. 아무리 내용을 몇 번 들어봐 알고 있던 홍길동전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고전은 고전이었다. 어려운 단어들이 내 생각보다 많았다. 아마 외국 고전 문학은 현대어로 다 재해석 되어 나오는데 한국 고전 문학은 재해석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이렇게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은 점도 많았다. 고전 소설이다 보니 역사와 연계되어 나오는 부분이 몇 개 있었는데, 뭔가 이런 부분들이 나에게 역사를 공부해야 되겠다는 의식을 일깨워준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율도국이었다. 아마 이게 한국 고전 문학에서 나온 가장 첫 번째 이상국이라고 알고 있는데, 허균이 지적한 사회적 모순들을 해결한 이상국이라는 점이 주목할만 한 것 같다. 아무래도 홍길동전 자체가 허균이 이 책을 지을 때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유토피아보다 조금 더 특별한 것 같다. 지금은 없는 신분차별 (적서 차별) 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 그 예이다.


  혁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외모가 예쁜 것보다 훨씬 더 곁에 두고 싶어진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