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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독후감

[독후감] 레디메이드 인생

레디메이드 인생을 읽고

 

유시연

 

 레디메이드 인생은 지식층 실업자인 P씨의 며칠을 그린 이야기다. P씨는 당시 상당한 교육을 받고 자랐었는데도 불구하고 실업자였고, 취업을 하기 위하여 지인인 K사장에게 취직을 부탁한다. 하지만 K사장은 일자리가 없다며 농촌으로 내려가 운동이나 하라고 충고하지만, P씨는 그에 반발한다. 그 뒤 P씨는 인텔리에 대한 생각을 곱씹으며 자신의 처지에 맞지도 않는 비싼 담배를 산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아들 창선을 데리고 가라는 친척의 편지였다. 그에 한숨만 내쉬던 P씨 앞에 M과 H가 그를 찾아온다. 둘 모두 경제학, 법률을 전공한 이름 바 ‘인텔리’였지만 실직자인 건 똑같았다. 세 사람은 H의 법률 책을 팔은 얻은 돈 6원으로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하룻밤 놀게 된다. 그 때 H와 M의 소개로 어느 유흥업소에 들어가게 되고, 앳되어 보이는 여성이 고작 20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을 보내자는 말에 P씨는 환멸을 느껴 전 재산인 약 1원을 던지고 나와 버린다. 그 다음날 P씨는 아들(창선)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어렵사리 돈을 꿔 집안 용품들을 산 뒤, 인쇄소의 문선 과장을 찾아가 아홉 살 난 자기 애에게 일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그 후 창선을 만난 P씨는 아들을 인쇄소에 취업시킨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이 굉장히 강렬했다. 처음에는 레디메이드의 뜻을 몰랐지만 나중에 가서는 대충 그 뜻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자세히 찾아보니 이미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데, 제목이 내용과 정말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부분은 P씨와 M, H씨가 돈을 쓰면서 유흥업소에 간 부분이었다. 그 부분에서 여성의 말을 듣고 환멸을 느끼는 P씨의 마음이 나로 하여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떠올리게 했다. 굉장히 어둡고 난해한 소설이어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데, 인간 실격의 화자인 요조의 수동적인 행동과는 달리 P씨는 비슷한 상황에서 부조리함을 느끼고 그 장소에서 나오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더불어 책을 읽으며 P씨에 대한 동정심이 마구 차올랐다. 만약 내가 P씨였어도 사회와 세상을 향한 혐오감이 가득했을 것 같다. 자신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을 뿐인데, 사회에 나와 보니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과잉되어 넘쳐흐르고 있었다. 정말로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지금까지 행했던 자신의 노력과 시간이 배반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그에 자식에게는 인텔리로 공부하게 하지 않고, (인텔리에 비해) 단순 노동하는 노동자의 길을 열어준 것도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창선이의 결정권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고, 이는 또다시 후에 불행과 갈등을 낳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책을 읽으면서 P씨가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지식층이라고 말하면 보통 고소득층의 고위생산직을 떠올리는데, 그런 이미지와는 다르게 P씨는 구차하고, 미련하며 또 자존심은 세다. 물론 월급 30원의 직장이 있다면 무조건 달려가서 하겠다는 언급이 있었지만 당장 이번 주 밥 먹을 돈도 없는 상태에서 싼 것 대신 비싼 담배를 사는 부분이 워낙 인상 깊어서인지 은근 인텔리로서의 자존심이 세다고 느꼈다. 비교적 옛날에 쓰인 소설이지만 이렇게 ‘현실적이다’라는 감상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마 지금이 그 때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니 이런 일반화된 공부는 다 쓸데없다고들 말하면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공부는 하라고 한다. 그러고 성인이 되고 구직을 할 때면 지금껏 뭘 해왔냐며 되로 묻는다. 과연 자신의 꿈도 없는 상태에서 하는 공부는 후에 뭘 얻고자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